소요리문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에 대한 생각

학생때 공부한 교리중에 소요리 문답의 첫장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나온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
영화롭게 하는 것, 즐거워 하는 것...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로 귀결되는 것으로 배웠다.
물론 예배의 정의에 따라 논란의 거리가 되겠지만 좁은 의미로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예배로 정의하자.
주일낮시간에 드리는 그 예배. 찬양과 기도와 말씀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행위.
그렇게 예배에 대해서 좁게 해석하고 들어가 보자.
물론, 예배를 넓게 해석하고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의 의미를 넓히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되면 한없이 확장되고 궤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일단 좁은 의미로 접근해 볼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그를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해서...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동의 하기 어렵다.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볼때, 자식의 제일되는 목적이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창조주가 자유의지를 주셨고 자유의지의 최종목적지가 나를 찬양하기 위해서???
뭐가 이상한 논리다.
웨스트민스트 소요리 문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중세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여러 신학자들이 고민하고 고민하여서 만든 결과일텐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보는 관점은 이렇다.
청지기적인 관점으로 본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고 자유의지를 주고 이 창조세계를 가꾸라고 맡긴 것이다.
창세기에도 그런 말씀이 나온다.
창조의 목적이라고 한 것 자체가 어쩌면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창세기에도 인간을 창조하고 보시기 심히 좋았더라고 나오지 목적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 우주의 작품에 대해서 만족해 하시면 흐뭇해 하는 것이다.
부모 자식의 관점으로 다시 돌아와도 부모는 왜 자식을 낳았나?
목적을 가지고 낳는 것일까? 아니다.
그냥 보기에 흐뭇하고 좋은 것이다.
그 뒤에는 그 자식이 성장해 가면서 잘되기를 바라고 그의 행복을 바란다.
부모존재에 대해서 부정하는 행위는 괘씸할 수 있으나 부모라면 자식 행복이 우선 아닐까? 동일하게 창조물과 피조물에 적용시켜도 마찬가지 아닐까?
차라리, 인간의 창조 목적이라기 보다는 창조 의미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창세기에 언급된 것과 같이, 사람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위임권을 준다.
잘 살아보라고, 목적이 아니라 권리를 준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뒷바라지 하고 자식으로써 권리를 가지는 것처럼...
부모가 자식을 성장시켜 세상에 보내는 것처럼, 창조주도 인간에게 창조세계를 잘 가꾸면서 알콩달콩 잘 살아 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이미 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이상, 어쩔 수 없이 너희의 자유의지에 맡길 수 밖에 없고 잘못되더래도 그 뒷처리 또한 창조주가 책임지는 것으로 귀결한 것이 아닐까?
그 책임지는 행위가 바로 독생자를 보내셔서 창조세계의 회복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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