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신론자인 이유

나는 프로그래머이다.
프로그램 언어의 역사는 기계어로부터 시작되어 저급언어, 고급언어에서 오늘날의 객체지향언어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렇게 프로그램 언어들이 점차적으로 발전한 이유는 프로그래머의 같은 물음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동일한 작업을 추상화해서 다음에도 최소한의 변경만으로 재활용할까라는
문제였다.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프로그램의 언어와 작성기법들이 발전해 나가고
그 고민의 흔적들에 의해서 패턴이라는 것이 나오게 된다.
그런 패턴들의 조합으로 계속해서 창조적이고 효율적인 작업이 이루어진다.
패턴의 조합에 의해 새로 창조된 패턴이 만들어 지고 그 창조된 패턴들의 조합으로
또 다른 창조된 패턴들이 무한루프속에서 계속 뭔가를 생산해 낸다.
처음 한가지 씨앗을 뿌리게 되면 그 씨앗을 중심으로 무한히 반복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다는 이 시나리오...
이런 패턴의 흔적들이 있다면 나는 설계자가 있다고 믿는다.
엔지니어라면 공감할 것이다.
설계의 효율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패턴들이 만들어 질 수 밖에 없음을.

그럼 반대로 어떠한 패턴도 발견할 수 없다면 지적설계도 없는 것일까?
벽에 페인트를 뿌려보라. 일정한 패턴이 있는지를..
계속해서 바뀐다. 수백만번을 반복하면 토기 모양이 나타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뚜렷한 패턴이 없다. 패턴의 관점에서 보면 흩어진 페인트에서는 뽑아 낼 수 있는 그런 속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이란 그런 것이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패턴의 흔적을 찾아보자.
먼저, 창조의 가장 기초가 되는 우주을 보자.
우주에는 수많은 패턴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핵력,중력,전자기력과 입자의 조합으로 모든 것이 창조되어졌다.
우주의 은하도 무거운 물질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은하의 구성요소들이 돌아가고
은하의 하나인 태양계도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움직이며
물질의 작은 단위인 원자를 보아도 핵을 중심으로 전자들이 돌아간다.
물질의 구성이 뭔가 하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기본 패턴이다.
그 패턴을 가지고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가장 큰 우주까지 구성되어 있다.
자연속에 존재하는 패턴은 또 어떨까?
카오스이론에 나오는 몇가지 예를 보자.
나뭇잎을 관찰하면 5배의 배율로 보면 A라는 모양이 나타나다가 20배로 보면 없어졌다가
50배로 보면 또 A라는 모양이 발견되었다가 200배로 보면 또 없어졌다가..
비슷한 패턴이 확대하면 할수록 반복해서 보인다.
망델브로의 프랙탈 해안도
인공위성에서 보면 꾸불꾸불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내려와서 보면 구부러진 면이 실상은 직선에 가깝게 보이고
또 조금 더 내려와서 보면 직선이 아니라 울퉁불퉁해 보이고
다시 조금 더 내려와서 보면 다시 직선처럼 보이고...
생명체의 번성과 감소에서도 불규칙적인 것 같지만 패턴적인 입장에서는 규칙적이며 안정적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야말로 우연의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것은 다양한 패턴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자연선택에 의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
자연은 열역학의 법칙들에 의해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법칙들은 왜 그렇게 일어나야만 하는지를 물어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수학의 공리처럼 취급한다.
전기력과 자기력은 왜 생기는지를 묻는다면 입자의 스핀 때문이라고 답하겠죠.
그럼 입자는 왜 스핀이 있는지.. 왜 중력이 있는지...
원래 그런것이야.. 그게 공리야.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건 관찰에 의한 것이지 최초 설계의 관점은 아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도 논란이 많다.
스티븐 호킹의 빅뱅의 허수론도 어차피 수학적 관점이지. 답은 아니다.
이런 모든 것이 우연일까?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은 난 설계자가 있다고 본다.
패턴의 지적설계론에 대해서 혹자는 눈먼 시계공의 바이오므프로 예로 들지도 모른다.
바이오므프야 말로 얼마든지 우연에 의해서 다양한 종들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는 다르게 보인다.
굳이 바이오므프의 최초 패턴을 블루클리처럼 생긴 것으로 할 게 아니라 아예 점으로 출발하면 조합에 의해서 얼마든지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
바로 그 점이라는 만능 키에 의해서 무엇이든지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를 분석하면 바로 그 만능의 점들이 무수한 조합을 이루어 또 점과 같은 패턴을 이루어 낼 것이다.
무신론자나 신을 혐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의 생각이 엉터리라고 말할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부분에 대해서 수많은 논리적인 모순을 지적할 지도 모른다.
괴델이 신의 존재에 대해서 수학적으로 증명해도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는 유한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논리적 증명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공리와 같은 하나의 주장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는 말하고 싶은 것은 패턴에 의한 지적설계론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런 패턴들을 볼때 누군가가 이 우주를 설계했고
나는 그 설계한 분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
물질의 근원을 다루는 분.
시공간을 초월하기 보다는 시공간을 다루는 분.
그렇다면 그분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은 기적이 아니라 그냥 일상인 것이다.

여성의 일관된 진술에 의존한 성범죄 판결

일단은 남성이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고 가정하고 적어본다.

성범죄 전문가는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판단한다.
아주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전에 누적되어 온 피해유형이라고 하자)을 가지고 종합적인 상황을 판단하여 이것이 성범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 어둔한 초범의 가해자가 실제로 성범죄를 했을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전문적인 지식의 필터로 걸러지고 올바른 판단을 하리라 생각한다. 처음 도입시에는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가해자가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증거부족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었으니.

이제 시간이 10년 정도 흘렀다고 가정하고 소설을 써 보자.
이 전문적인 지식은 어느 정도 일반인에게도 통용되는 지식이 되어 더 이상 전문적이 지식이 아니라고 하자.(물론 범죄도 진화하고 더불어 판단근거도 진화해 갈 것이지만 일단 이렇게 가정하자.) 
성범죄 피해에 관한 지식이 있는 한 여성A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여성A는 5명 직원을 가진 소기업에서 일한다.
사장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장은 여성B에게 더 호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적극적으로 구애활동을 펼쳤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고 소문에 여성B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자존심도 상했고 복수을 결심했다.
이 소기업은 허름한 3층짜리 건물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회사나 건물내에는 
CCTV도 없다.
3층짜리 건물을 빠져 나오면 바로 앞 인도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CCTV한대가 있다.
어느 날 퇴근할려는 회사사장에게 이 여성A는 서류정리작업을 같이 해 줄 것을 요구했고 단 둘이 사무실에서 서류정리하는 야근을 하게 되었다.
그 날 여직원은 8시에 퇴근하면서 애인이 밖에 데리러 와서 부끄럽다며 사장님은 조금 늦게 나오라고 요구했다.  여직원은 사무실 문을 나서면서 브라우스의 단추 몇개를 풀고 옷을 약간 흐트린 후에 급하게 3층짜리 건물을 뛰쳐 나간후에 잠시뒤에 옷을 추스린 후에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다음날 성범죄를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

자.. 이제 어떻게 진행되겠는가???
여자는 구체적으로 일관된 진술을 했고 회사밖 CCTV에 브라우스 단추를 잠그고 옷을 추스리는 장면도 고스란히 찍혀 있다.

여성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억지 소설을 쓰지 말라고. 
그래.. 말 그대로 가정을 한 소설이다.
일어날 확률이 낮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누군가 계획하고 마음을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물론 역의 경우도 성립한다.
가해자가 마음먹고 하는 경우에도 증거를 찾기 어렵다.
이런 일들이 인간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는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재판이 가능할까?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피해자가 증명할지 가해자가 증명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증명이 될 수 없는 문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ㄱ소리인 것이다.
추상적인 고통의 개념에 대해서 더 이상 언어만으로 증명할 수 없듯이
자꾸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여 한날 인간에 불과한
재판관의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증거가 없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은 억울해도 할 수 없이 증거위주로 가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무고죄의 형량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라이브 아카데미] 영어 연습가이드

유트브의 라이브 아카데미를 공부하면서 글로써 정리해 보고자 한다.
상당히 잘 설명해 주고 언제나 고마운 유튜버이다.

1. A Big Disadvantage Of Being A Woman
원문 : https://www.youtube.com/watch?v=EAqV2A8C9kI&list=PLIsIUJcT0HIWveTaGptQSm4ZNkF3ZCrBZ

  "남자로서 가지게 되는 꽤 큰 장점 중 하나는 밤 늦게까지, 혹은 그냥 밤 늦게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우리 남자들에게는 자주 드는 그런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일상적인 일이니까요. 근데 제가 이거에 대해서 처음 듣고 솔직히 좀 충격이었고 약간 실망스러웠어요 - 여자들이 단순히 밤 늦게 길을 걷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는지에 대해서요."

1) 남자로서 가지게 되는 꽤 큰 장점은(남자인 것에 대한
→ One Pretty big advantage of being a guy is

2) as much
비교적 상대적으로
3) not having to
to 이하 할 필요가 없다.

4) 밤늦게까지 나가 있는 것.
staying out late at night.

5) 우리 남자들 : us guys.

6) 뉘앙스 차이
a. I think this is something that doesn't occur to us guys.
b. I think this doesn't occur to us guys.

a가 조금 더 자연스럽고 완화된 표현이고 b는 너무 직접적이다. 우리도 대화를 하다보면
논리적으로는 필요없지만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매끄럽게 들리는 말이 있다.



스마트폰, 휴대폰(CELLPHONE or SmartPhone)과 666 BEAST

오늘 요한계시록 13장을 읽다가 간만에 666을 보았다.
666이란 단어는 나의 학창시절에 흥미있는 주제중의 하나였다.
여러가지 썰들을 풀어 놓으며 바코드가 666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다.
몇몇의 신학자들은 단지 비유에 불과하다고... 설령 이마에 그런 바코드를 찍어 주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오늘 요한계시록 13장을 읽으면서 컴퓨터가 아닐까 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과연 컴퓨터의 수가 666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내용은 억지주장처럼 별로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말이 나온 김에 나도 방금 내 머리속에서 떠 오른 단어 3개로 장난을 쳐 보았다.
COMPUTER, INTERNET, CELLPHONE.

모두 ASCII코드로 변환하여 더하는 식이었다.
(ASCII코드는 컴퓨터에서 숫자(0과1)만 인식되므로 그 숫자를 어떻게 영어로 표현할까 고민다가 만든 약속이다.)
예를 들면
C -  ASCII코드 67
O -  ASCII코드 79
M -  ASCII코드 77

이다.

그렇게 해서 3가지를 더해 보니.
COMPUTER = 623
INTERNET = 617
CELLPHONE = 666

허걱.. CELLPHONE이 요즈음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도구(신용카드까지 휴대폰에 들어가니 매매의 수단이기는 하지만)이지만...
그런데 CELLPHONE의 ASCII코드를 더한 수가 666이 나오다니...
정말로 CELLPHONE이 성경이 말한 666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조금 더 성경을 보니
짐승과 CELLPHONE이 연결되어야 논리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한 5분정도 더 시간을 투자하여 CELL, CELLULAR까지 검색해 봤지만 짐승과는 쉽게
연결할 수가 없었다.
쩝.... 뭐 성경 연구학자도 아니고 더 깊이 빠지면 확증편향으로 갈 수도 있으니..
여기서 끝내고.

로또 맞은 기분으로 그럴싸한 단어를 3개 찍었는데 그 중에 666이 나와 버리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신기하고도 해서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서 글 남겨 봤습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차이점에서 기인한 행동양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메모형식으로 적어본다.
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들이므로 너무 개념치 마시고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 ^^

한국어의 동사는 "~하다"가 주류를 이룬다.
공부하다. 일하다. 요리하다. 심지어 억울하다 까지.(억울이면 억울을 당하든지 억울에 빠지든지 해야 하는데 억울마저도 억울하다로 나타내다니...)
"~하다"라는 것은 대개 행동을 수반한다.
한국인들이 부지런한 이유도 "~하다"라는 동사에서 기인하여 무의식속에서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반면에 영어권에서는 존재유무의 BE동사,  HAVE,GET등의 소유동사와 LET,MAKE등의 사역동사가 존재한다.
BE동사 자체는 상당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언어를 만들면서 존재유무을 기본골격으로 하여 어떤 것을 표현하는지 놀랍다.
I am a student.라고 하면 아마도 나는 학생으로써 존재하고 있다란 말로 해석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도 한국어로 멋지게 번역해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지만 직역하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의미이다.
어떤 사물을 봄에 있어서 존재유무가 기본 표현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도 존재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사유했고 그  결과로 모든 사물들이 사라져도 생각하고 있는 나는 남아있으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나 보다.
이 존재란 개념을 기본으로 하여 가지고 있는 상태(소유)에 대해서 묘사하는 단어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have, get등이 생기고 이 소유란 개념에서 파생하여 give등의 수여동사을 기본으로 뻗어 나간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언어에 의해서 사고체계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무의식속에서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하지만 언어속에서 이미 사고의 틀을 어느 정도 잡혀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생각의 탑들을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8년 10월 영어회화

● 9/29일 영작
   밥을 태우면 냄비바닥에 쌀이 탄 것이 남는다.
   → If you overcook rice, you can see the crust of overcooked rice on the bottom of pot.
   ※ 누룽지를 설명하는 것인데..
  1. 밥을 태우다란 표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고(심지어 burn이란 단어는 생각 안 났음)
  2. 바닥에 밥이 탄 것을 표현하는데 어려웠다.

  ▷ 오늘의 단어 : foods supplement

가능성이 높다/낮다 영작

● 원문 : https://www.youtube.com/watch?v=fMCSKorNE5g

가능성이 높다. 낮다라고 표현할때 항상 possibility란 단어만 사용하다가
구글링해서 찾아 보았다. 자연스러운 표현이 있는지..

원어민과는 서로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원어민들도 가능성이 높다 낮다라고 직접 표현할때는 possibility을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표현처럼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어민이 잘 사용하는 단어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말하는 가능성이 높고
낮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

1) probably(가능성이 조금 높은 정도..)
 즉, 원어민들은 "아마"란 의미로 가능성이 높고 낮음을 표현한다.
 예1) 그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 그는 아마 날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 he probably does not love me any longer.
 예2) 우리는 이틀정도 일찍 떠날 가능성이 많아.
    → We probably leave a couple of days early.

2) There is a good chance that ~
  좋은 기회가 있다란 말이 가능성이 많다... 잘 연결되지는 않지만...
  예1) 이번 주말에 비가 올 가능성이 많아.
    → There is a good chance that it's going to rain this weekend.
  예2) 조심하지 않으면 길을 잃어 버릴 가능성이 높아(많아.)
    → If we are not careful, There is a good chance that we're going to get lost


왜 낮은 음을 화음으로 연주하면 불편하게 들릴까?

C코드의 경우에는 도,미,솔이라는 3가지 음으로 구성된다. 피아노나 기타로 연주하면 전혀 불편함 없이 아름답게 들린다. 그런데 더블베이스(베이스기타)로 도,미,솔을 누르고 연주하면 뭔가 불협화음처럼 들린다. (피아노에서도 낮은 옥타브에서 C코드를 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