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기독교인들은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나 역시도 수없이 많은 기도의 설교와 책(몇 권 안되지만.ㅎㅎ)을 읽었다.

간증도 많이 들었다.기도의 필요성을 수없이 많이 강조하면서...

나도 여러 사람들과 기도의 제목을 나누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뭘까? 

무엇인가를 구한다라는 행위인데 뭘 구하는 것일까?


그렇게 고민을 할까봐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기도하라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

무슨 기도를 할 것인지는 주기도문속에 답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기도의 50%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한면서.

나머지 50%는 우리의 생활속에는 일용한 양식, 그리고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대학을 가야 된다면 어떤 대학을 가야될지 기도한다.

그럼 이 기도는 주기도문의 어디에 해당할까?

대학 가는 것이 일용한 양식과 죄의 유혹에 해당되는 기도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올리고자 하는 기도인가?

그 속에 나의 욕망은 없는가? 내가 잘되기 위한 당위성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올리 것에 연결하지는 않았는지

왜 어느 대학에 가야될지가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가?

한번 심각하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너무 당연시 되어 왔던 기도들.

결혼의 문제, 직장 선택의 문제등 중요한 선택을 하는 시점에서의 기도들.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라는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느 대학에 가는지가 그 분의 입장에서 중요할까?

내가 서울대학을 가든 부산대학을 가든... 그게 그 분의 관심사 일까? 

그 분의 입장에서는 그 대학에 가서 어떤 삶을 사는가가 중요한 초점이 아닐까?

정작 중요한 것은 대학 선택이 아니라 그 속에서의 과정이다. 

대학 과정에서의 하나님과 동행이다.

나와 함께한다면 어느 대학가도 괜찮아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모든 결정가운데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어디를 가든지 함께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이제까지는 결과를 생각하면서 선택의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삶의 문제로 옮겨야 한다. 

물론 아무렇게나 막 선택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무엇인가를 결정할때 주의 깊게 성경을 다시 보면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실제로 선택에 따라 이후에 많은 것들이 달라지므로 그래서 인간들이 그렇게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자유의지이다. 

너무 하나님을 책임전가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선교단체가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를 두고 기도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세세한 하나하나까지 그분께 맡기고 나아간다라는 의미이지만 글쎄... 공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주관적 영적경험에 치우친 지금의 기독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유의지의 실종.

아니, 어쩌면 자기 맘대로는 살지만 책임은 하나님이 져라는 책임전가의 삶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도구가 되어서 잘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지(유혹)의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고 우리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 보고 

힘들때 함께 해 주심으로 이겨나갈 수 있게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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