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본질은 작품 그 자체일까? 아니면 주변요소도 포함될까?

작품의 본질은 작품 그 자체일까? 아니면 주변요소(작가,시대상등)도 포함될까?

여기서 작품이라 함은 미술작품 음악작품 문학작품등을 의미한다.
요 며칠전에 인문계열 출신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하나의 작품에 대해서 논할때 작가를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란 의견을 들었다. 누가 그 작품을 창작해 내었는지는 중요한 요소라고. 누가 창작했는지에 따라 작품 이외의 시대상이라든지 주변 요소를 감지할 수 있다고한다. 작품 해석을 위해서는 때로는 불가피하게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발자취가 필요하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되면 편견이라는 요소를 배제할 수 있을까?

철학적 고찰을 위해서 또 소설을 써 보자.
어떤 부자 부부가 있는데 한명은 심리학자이고 또 다른 한명은 고고학자이다.
노년을 위해서 교외의 오래된 성을 구입하여 내부를 리모델링 하였다.
리모델리 하는중에 어떤 고고문서를 발견하였는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6번이었다.
고고학자는 엄청난 희열과 함께 당장 세상에 발표할려고 했지만
심리학자는 그 전부터 해 보고 싶은 TEST가 있었다.
예술작품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TEST였다.
TEST는 이러했다.
베토벤의 새로운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6번을 내어서 온라인에 업로드 시켰다고 하자.
베토벤이 직접 작곡하였기에 베토벤풍의 느낌은 물씬 풍긴다.

자 이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과연 그 작품에 열광할까?
그 작품이 업로드 된 것도 모르니까 열광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럼 주요 매체에 광고비를 수십억원 들여서 복면가왕처럼
이 시대에 베토벤이 빙의했다면서 모든 사람에게 알렸다고 가정하자.
베토벤이 직접 작곡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베일에 가려진 어떤 작곡가가 베토벤 흉내를 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까?
광고비를 수십억씩 사용했으므로 관심있는 사람은 들어 볼 것이다.
그리고는 베토벤의 느낌이 나기는 나네... 딱 거기까지다.
열광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베토벤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3개월뒤에 진짜 이 작품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6번이라고 발표한다.
그때부터 수많은 검증작업을 거쳐서 진품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때부터 대중들은 미친듯이 열광할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베토벤이 아니라고 했을때에는 열광하지 않다가 베토벤이라고 하니까 열광한다.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 현상이 당연한가?
현상만을 놓고 보면 나 역시 인문학 출신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베토벤이라는 친필이 들어가니까 그 때부터 그 작품의 가치는 올라가니.
그런데 그 작품은 음표하나 바뀐 것이 없다.
그 전에도 후에도 그 작품은 동일한 것이다.

어떻게 결론내어야 할까?
작품에 가치를 부여한 인간들의 집단적인 행동양식?
아니면 해석의 차이.
작품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본질적인 것이 비본질적인 다수의 생각에 따라서 변화한 것이다.
그냥 인간의 모순적인 행동양식을 정당화한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시장에서도 그 예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어떤 제품이 있는데 그 제품은 변하지 않았는데 광고를 통해 어떤 해석을 하고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얼마든지 변한다.
나에게는 적어도 이 작품의 문제도 그렇게 보인다.
작품 그 자체보다는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고
그 해석은 끝내 다수의 대중들 또는 전문가에 의해서 평가하고
다수의 대중은 베토벤의 친필하나에 마음이 움직이므로 그 가치가 변하는 것이라고.

이런 문제도 그러할진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뜻과 관계없이 다수에 의해서 변질되는 것은
당연한 인간세계의 속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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